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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이 보여주는 슬픔의 형식

by redstar9 2025. 8. 7.

과거에는 부고를 통해 알게 되었던 누군가의 죽음이 이제는 뉴스보다 빠른 속도로 SNS 피드 속에 등장합니다.

친구의 게시물 사이에 끼어드는 부고의 형식은 우리에게 새로운 형태의 애도 방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슬픔의 형식은 어떻게 진화되고 있을까요?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슬픔의 형식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슬픔의 형식

1. 알고리즘은 죽음을 왜, 어떻게 보여줄까

SNS 피드는 기본적으로 사용자의 관심사와 상호작용에 기반해 알고리즘이 콘텐츠를 큐레이션합니다.

즉 내가 자주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단 친구의 소식이 피드 상단에 나타날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

런데 이 알고리즘은 기쁨과 슬픔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결혼 소식 다음에 사고로 인한 사망 소식이 등장하고 웃긴 영상 아래에는 친구의 장례식 일정이 게시되기도 합니다.

사망 소식을 올린 이의 감정과 상관없이 콘텐츠는 기존의 방식대로 노출됩니다. 이는 일종의 감정적 평평함을 만들어냅니다.

내가 누군가의 죽음을 피드에서 마주하는 방식은 그 사람과의 관계뿐 아니라 플랫폼이 제공하는 형식에 의존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장례식 안내문이나 고인의 생전 모습이 담긴 영상이 피드에 떠오르면

나는 그것을 클릭하거나 넘기거나 반응해야 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알고리즘은 그 선택의 여지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어떤 감정을 유도하거나 제한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SNS 알고리즘은 죽음을 단지 또 하나의 콘텐츠로 처리합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타인의 상실을 목격하면서도 이를 감정적으로 어떻게 수용해야 할지 방향을 찾기 어렵습니다.

감정의 밀도가 높은 이 콘텐츠들이 반복적으로 노출될 때 애도는 사적 경험에서 공적 소비로 변모하게 됩니다.

특히 그 소비의 과정에서 우리가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은 제한적입니다.

대부분의 플랫폼은 감정을 단순화된 버튼이나 이모지로 나타내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고인의 죽음을 접한 순간에도

우리는 좋아요 혹은 슬픔 버튼 중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반응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구조는 우리가 타인의 죽음에 어떻게 반응하고 애도하는지를 형식적으로 제한하며

애도의 감정 자체를 디지털 기호 안에 가두어버립니다.

이제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이런 표현 방식은 과연 충분한가. 좋아요 하나로 슬픔과 애도를 전달할 수 있는가.

이러한 제한된 반응 구조는 슬픔이라는 감정의 복잡성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가.

2. 좋아요로 표현하는 애도의 감정

피드에 떠오른 사망 소식을 보고 우리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반응하게 됩니다.

가장 직관적인 반응은 좋아요 혹은 슬픔을 뜻하는 이모지로 감정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방식은 명확한 한계가 있습니다.

누군가의 죽음에 좋아요를 누르는 행위는 다소 모순적으로 느껴지며 때로는 예의 없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반면 슬픔을 표현하는 이모지는 너무 간단해서 애도의 감정을 담기에는 부족해 보이기도 합니다.

댓글을 남기는 것도 하나의 방식이지만 어떤 말을 써야 할지 모를 때 우리는 침묵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플랫폼은 침묵에 반응하지 않습니다.

아무런 상호작용이 없는 콘텐츠는 알고리즘 상 노출 빈도가 줄어들게 됩니다.

이로 인해 고인의 추억을 공유하거나 애도하는 게시물은 사라지는 속도가 빠르며

결국 디지털 공간 속에서 슬픔은 쉽게 지워질 수 있는 정보가 되어버립니다.

페이스북은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일부 계정에 메모리얼 모드를 도입해 고인의 타임라인을 추모 공간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 방식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피드에 섞여 등장하고 감정적으로 어떤 맥락에서 보게 될지는 여전히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각자의 감정을 조율하면서도 플랫폼의 방식에 맞춘 애도 방식을 익혀가고 있는 셈입니다.

3. 디지털 플랫폼으로 이동하고 있는 애도의 공간

죽음을 둘러싼 애도의 공간은 물리적 장소에서 디지털 플랫폼으로 점차 이동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영정 사진이 놓인 장례식장에 모여 슬픔을 나누었다면 이제는 고인의 계정에서 추억을 꺼내고 댓글로 기억을 이어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돌아가신 분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계속해서 메시지를 남기거나 생일을 챙기며 살아 있는 사람처럼 관계를 유지합니다.

이러한 방식은 단절의 감정보다는 연결의 감정을 선택하게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공간은 상업적 목적을 가진 플랫폼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고인의 게시물이 일정 기간 지나면 광고 사이에 끼어들게 되고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콘텐츠와 함께 추천되기도 합니다.

이는 슬픔이 어떻게 소비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추모를 위한 계정 전환이나 자동응답 설정 같은 기능들이 점차 늘고 있지만 여전히 알고리즘은 개인의 죽음을 예외로 처리하지 않습니다.

타인의 죽음이 불쑥 나타나고 갑자기 사라지는 이 환경 속에서 우리는 슬픔을 겪는 방식도 점차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디지털 플랫폼에서는 타인의 죽음을 목격한 이들이 애도의 감정을 느낀다 해도 그것을 표현할 언어와 방식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한정된 버튼과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반응 양식 안에서 우리는 깊은 슬픔조차 피상적으로 전달하게 되고

때로는 애도의 진정성까지 의심받는 상황에 처하기도 합니다.

결국 애도의 감정은 점점 개인적인 고백이나 조용한 위로가 아니라

타인의 타임라인에 노출되는 형식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감정을 나누기보다는 보여주기 위한 반응에 익숙해지고 있으며

죽음이라는 사건마저 콘텐츠처럼 다뤄지는 현실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콘텐츠화된 슬픔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고 진심 어린 애도는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는 것일까요?

SNS를 통해 타인의 죽음을 마주하는 일은 점점 더 흔해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감정적인 무감각에 빠지기 쉬운 환경에 놓이게 됩니다.

비슷한 게시물을 반복해서 보거나 감정적으로 힘든 글을 계속 마주하면 정서적 피로감이 누적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부 사용자들은 일정 기간 SNS를 끊거나 애도 게시물을 따로 모아서 기록하는 방식을 택하기도 합니다.

특정 태그를 활용하거나 고인의 계정을 북마크해 두는 방식은 개인적인 추모의 형태를 만들어가려는 시도입니다.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슬픔의 형식을 무조건 수용하지 않기 위해서는 감정 표현 방식에 대해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합니다.

디지털 환경은 죽음을 더 가깝게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더 빠르게 소외시키기도 합니다.

슬픔을 제대로 느끼고 표현하기 위해서는 단지 반응을 넘어선 감정의 언어가 필요하며 그 언어는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과제입니다.

SNS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도구였지만 이제는 사람과 죽음도 연결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이 공간에서 우리는 알고리즘이 만들어내는 슬픔의 형식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감정의 밀도를 놓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진정한 애도를 위해 우리는 새로운 방식의 감정 기술을 고민할 시점입니다.